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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11월 6.25전쟁영웅 “찰스그린” 육군 중령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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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11월 6.25전쟁영웅 “찰스그린” 육군 중령 선정
  • 정민국 기자
  • 승인 2015.11.17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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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별,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산화하다”

▲ 찰스그린 육군 중령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찰스 그린(Charles Green) 호주 육군 중령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24세의 나이로 호주 최연소 대대장이 되어 전공을 세운 찰스 그린 중령은 종전 후에는 일반인으로 돌아와 부인과 어린 딸의 가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새로이 창설된 정규 육군 첫 호주 보병대대 지휘관으로 선임되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1950년 9월 8일 일본에 도착한 그린 중령은 당시 훈련 수준이 매우 빈약했던 대대를 몇 주 만에 적군에 맞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견실한 전투부대로 바꾸어 놓았다. 그가 이끄는 호주 육군 제3대대는 9월 28일 부산에 상륙한 뒤 영연방 제27연대에 배속되어 연천전투․박천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북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1950년 10월 29일 정주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또 한 번의 승전보를 울린 다음 날, ‘달천강’ 근처에서 진지를 구축하던 중 그린 중령은 북한군이 쏜 포탄 파편에 복부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즉각 근처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늘 침착하고 조용히 부대원들을 챙기는 지휘관이었던 그는 치명상을 입고 후송되는 동안에도 다른 부대원들의 안위를 염려하였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당시 제3대대의 정보장교였던 알프 알전트는 그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한국에서 그의 통솔은 항상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믿을 수 있는 명확하고 간결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항상 선두로 나가 있었고 주력 중대 그룹 바로 뒤에서 지휘했습니다’

그린 중령은 미국 은성훈장을 비롯하여 15개의 훈장을 받았으며, 당시 3살이었던 딸을 키우며 평생 수절한 올윈 여사가 전사한 남편을 잊지 않기 위해 쓴 책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는 호주전쟁문학의 뛰어난 성과로 꼽히고 있다.

/정민국기자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목포타임즈신문/호남타임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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