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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37년만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군과 정보기관 왜곡 바로잡아전남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전남경찰 역할 조사결과 확인
경찰서 최초 무기피탈…군 기록 도청 앞 집단발포 이전으로 왜곡
시민군 점령하 치안…군․정보기관은 약탈.살인.강도 판치는 무법천지
김재형 기자  |  honam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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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1  21: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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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나 정보기관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시민군이 점령하고 있는 광주시내 치안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큰 혼란 없이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약탈과 살인, 강도가 판치는 무법천지로 기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경찰관서 최초 무기피탈에 대해서도 도청앞 집단 총기 발표 후에 이뤄졌으나 군 기록은 집단 발표 이전으로 왜곡했으며, 각종 조사결과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러한 사실 확인은 전남경찰청이 11일(수)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에 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혀졌다.

한편 전두환 회고록은 5월 21일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 지휘권을 포기하고 행방불명된 것처럼 기재하고 있으나, 실제 안 국장은 단 한 순간도 지휘권을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관리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경찰청은 “이미 37년이 지나 당시 참여경찰관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생존경찰관의 증언을 확보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4월 26일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TF팀을 구성했다”며, “5․18의 완전한 진상규명에 기여하기 위해 이번에 수집한 증언과 자료를 영구 보존하고, 관련 자료와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해서 발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전남경찰청이 발표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조사결과 보고.

◎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조사결과 보고

▲ 배경
- 5․18의 경찰책임론을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을 계기로 살펴본 바, 그간 5․18 당시 경찰활동에 관한 자체 진상규명 노력이 없었고, 관련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 이미 37년이 지나, 당시 참여경찰관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생존경찰관의 증언을 확보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추진 개요
- 2017년 4월 26일 전남경찰청장은 자료수집 TF팀 구성과 5․18 당시 경찰활동에 관한 조사를 지시하였습니다.
- TF팀의 명칭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TF팀’(약칭 5․18 경찰활동조사 TF)으로 경정1명, 경감3명 등 총 6명으로 구성하여 4월 27일부터 약 5개월간 활동하였습니다.
- TF팀은 5․18 당시 근무경찰관 및 관련자 137명을 면담조사 하였고, 국가기록원, 5․18기록관 등을 통해 주요 자료를 확보하였습니다. 특히, 치안본부에서 작성한 ‘전남사태 관계기록’은 5․18 직후 작성되어 30년 비공개가 설정된 경찰감찰자료로서 이번 조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 주요 조사 대상
- 5․18 이전 시위 상황 및 경찰의 대응, 계엄군 투입 이후 경찰의 역할, 계엄군의 강경진압과 시위대의 무기탈취 과정, 시민군 점령기간 경찰활동 및 광주시내 치안상황, 계엄군 재진입 이후 경찰활동 및 신군부의 조치사항 등입니다.

▲조사결과 확인된 주요 내용
- 5․18 직전 광주는 경찰의 관리 하에 안정적인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계엄령 전국확대와 함께 5월 18일 새벽 광주에도 계엄군이 배치되었고, ‘경찰 요청이 아닌’, 군 자체 판단에 따라 5월 18일 16시부터 계엄군의 광주시내 진압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 경찰관서 최초 무기피탈은 5월 21일 13시30분 나주 남평 지서에서 발생하였으나, 군 기록 등은 도청 앞 집단발포 이전인 21일 08시 나주 반남, 09시 나주 남평 지서에서 발생한 것으로 왜곡하고 있으며, 각종 조사결과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 시민군 점령 하 광주시내 치안상황은 전반적으로 큰 혼란 없이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군이나 정보기관은 약탈과 살인, 강도가 판치는 무법천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5월 21일 15시경부터 2,000여 명이 넘는 경찰관이 도청에서 최종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도움으로 단 한 명의 경찰관도 피해 없이 소속 경찰서로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광주시민의 높은 시민정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 5․18 직후 경찰이 작성한 ‘광주사태 진상보고’라는 기록에도, 5월 21일 12시부터 14시 사이 계엄군은 이미 도청에서 철수하였고, 경찰만이 시위대와 단독으로 대치한 것으로 왜곡 기술하는 등 그 의도를 의심케 하는 내용도 확인되었습니다.
- 전두환 회고록은 5월 21일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 지휘권을 포기하고 행방불명된 것처럼 기재하고 있으나, 실제 안 국장은 단 한 순간도 지휘권을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관리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한편, 시민보호의 무한 책임이 있는 경찰이 5․18 당시 군의 과격진압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 포고령 위반자 검거와 같은 신군부의 수습활동 참여과정에서의 과잉 행위 등 경찰의 미흡한 조치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앞으로 계획
- 전남경찰은 5․18의 완전한 진상규명에 기여하기 위해 이번에 수집한 증언과 자료를 영구 보존하고, 관련 자료와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해서 발굴,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 TF팀 운영 개요

▲ 명칭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팀(5․18 경찰활동조사 TF).

▲ 구성(총 6명)
지방청 경무계장(경정)을 팀장으로 하여 경무․수사․정보 기능 팀원으로 구성.
▲ 활동기간
2017년 4월 27일~10월 11일(약 5개월).
▲ 조사 대상
5․18 민주화운동 전후 경찰역할 및 경찰활동사항
▲ 조사 방법
- 문헌 등 기록 조사 : 국가기록원, 5․18 기록관, 5․18 기념재단 등과 협조, 관련 경찰 관련자료 확보.
- 관련자 증언 : 5․18 당시 근무경찰관, 5․18 관련자 등 137명 면담 조사.
※ 일부 증언은 ‘안병하 국장 순직 진상 조사자료(2005)’ 인용

/김재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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