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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서부보훈지청, 7월의 6.25전쟁영웅 김해수 경찰 경감.석상익 경찰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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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서부보훈지청, 7월의 6.25전쟁영웅 김해수 경찰 경감.석상익 경찰 경위
  • 김창호 기자
  • 승인 2018.07.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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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6.25전쟁영웅 관련 사진.
전남서부보훈지청(지청장 김종술)은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2018년 7월의 6.25전쟁영웅 김해수 경찰 경감 ․ 석상익 경찰 경위를 지역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고 11일 밝혔다.

1950년 7월 1일, 적의 대대적 공세에 강원도 경찰은 대부분 남하했지만, 강원도비상경비사령부는 10만kw 규모의 화력발전소가 있는 영월을 방어하기로 결심하고, 영월부대는 당일 영월에 도착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 정보를 수집했다.

이 영월지역에서는 2일부터 수차례의 공방전이 계속 되었으나, 김해수 경감을 대장으로 한 결사대는 영월 탈환의 집념을 버리지 않고 7일 아침, 47명의 결사대를 편성하여 영월 재공격을 준비했다.

김해수 경감은 결사대로는 대병력의 북한군과 맞서 싸워 승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사대원 전원이 무사하기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남하하는 북한군을 지연시키고 영월지역이 화력발전소 등이 소재하는 등 중요성이 높은 지역임을 고려한 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8일 14시경 결사대가 녹전리의 송현고개를 막 넘어섰을 무렵 예상치 못하게 북한군과 조우하자 선제공격으로 북한군 일진을 격퇴시키고 계속 추격하여 백병전까지 벌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대병력이 아군을 포위하여 공격하므로 이에 대항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투를 진두지휘하던 김해수 경감이 적의 박격포탄에 장렬하게 전사했고, 이어 석상익 경위가 대신하여 결사대를 지휘하며 용전하였으나 역부족으로 석상익 경위마저 전사하여 결국 전투는 24명 전사, 7명 부상, 적 73명 사살의 기록을 남기고 종결됐다.

이처럼 아쉽게도 영월회복을 위한 전투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김해수 경감과 석상익 경위를 비롯한 강원도 전투경찰의 활약이 적의 진공을 지연시키는 데는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전투가 벌어졌던 영월군 녹전리에는 이 분들을 기리는 현충시설 ‘호국경찰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추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김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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