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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10>의병장 이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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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10>의병장 이강산
  • 호남타임즈
  • 승인 2013.05.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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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강산(李江山)
▲생애 : 1874년 4월 16일~1910년 6월 6일
▲출생지 : 전남 함평
▲운동계열 : 의병
▲훈격 : 독립장(1977)
▲공적내용
전라남도 함평 출신으로 상업에 종사했다. 1909년 7월 하순경에 함평군 대야면 복룡리에서 동지 박치일·정인술·박장봉·서성학·양창국 등과 함께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이들은 일찍이 의병운동에 참여해 명성을 드날리고 있던 김준의병장 휘하에 입대해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밀정 이판안·김정태·최치도·박복남이 그곳 이양삼의 주막에 모여 있는 것을 탐지했다. 1909년 8월 29일 함평 등지에서 적과 교전한 후 나주 헌병 분견소 구밀파견소의 이들은 평소에 의병활동을 방해해 오던 인물로서 반민족분자로 지목되어 있었다. 이강산은 함께 동행하고 있던 박치일·정인술·박장봉·서성학 외 2인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이들이 이양삼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양창국과 박병수가 그곳에 와 있었으므로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이에 양창국과 박병수도 동참할 것을 결의했다.

이렇게 의견이 일치된 여덟 사람이 협력해 이판안·김정태·최치도를 현장에서 살해하고 박복남을 산중으로 연행하여 살해했다. 그 후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적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모살죄로 교수형이 언도되어 항소했으나 1910년 3월 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원심대로 형이 확정되었다. 1910년 6월 6일 마침내 형이 집행되어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자료제공 : 목포보훈지청>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목포타임즈/호남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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