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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한 의원이 말하는 목포시의회 국외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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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한 의원이 말하는 목포시의회 국외연수
  • 호남타임즈
  • 승인 2011.09.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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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고하도, 싱가포르 센토사 처럼 청사진 갖고 개발 필요”/

타이완‘고궁박물관’전시물 중국 대륙 축소 역사 가치 높아

해외연수, 새로운 발견을 꿈꾸다.

이번 목포시의회 해외연수는 대상지가 타이완(대만)과 싱가포르였다. 공식적인 연수는 늘 예산상의 제약이 따른다. 때문에 아시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늘 안타까웠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이유는 대상 국가가 타이완과 싱가포르이기 때문이다.

먼저 지리적으로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기도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두 나라는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짙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서구 열강의 침략경쟁에서 식민지의 위치에 놓인 경험이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을 했고 타이완은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의 식민지였다.

이런 점에서 그 동안의 해외연수에서 둘러보기 식의 피상적 일정에 지쳐 있었던 내게는 이번 연수가 더 없이 가슴 설레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적인 연수를 바라보는 틀에서 벗어나, ‘비슷한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도 각 나라가 어떻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이 아주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을 바탕에 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대만(臺灣, Taiwan) ; 역사적인 아픔을 함께 한 나라

타이완의 기후는 아열대로 분류가 된다. 뒤에 방문할 싱가포르는 적도에 더 가깝기 때문에 열대성 기후이다. 그러나 양국 모두 우리나라의 한 여름(최고기온이 섭씨34도 정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습도까지 높다고 생각하면 딱이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땀으로 끈적거리는 날씨라면 상상이 쉽게 되리라.

인구는 2,300만 명으로 서울의 절반 쯤 되는 도시국가이다. 경제력은 국민소득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이 연수를 시작하면서 일정이 길지 않아도, 방문지가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향하는 첫 방문지가 세계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타이완 국립 ‘고궁박물관(故宮博物館)’이기 때문이다. 변변하게 해외 나가본 적이 없으니 세계3대 박물관은 그림으로나 구경해본 터, 그 중 하나라도 오늘 보게 된다면 다른 곳을 안 들려도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기대만큼 박물관의 외형이나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박물관의 규모가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전시물의 역사적인 가치에 있다. 그 광활하고 넓디넓은 중국 대륙을 타이완이라는 하나의 섬나라에, 그 곳의 박물관에 축약해 놓았다고 상상해 보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때문에 내 관심은 자연스레 이 모든 유물들이 얘기하는 아시아의 역사에 눈과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타이완의 고궁박물관을 중국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진열장 정도로 폄하하는 경향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유물을 가지고 바다를 건넌 장본인이 장개석이다. 모택동의 공산당도 중국의 역사이지만 장개석의 국민당도 엄연한 중국의 역사이다. 1949년 공산당에 중국대륙을 넘겨주고 타이완으로 넘어갈 때 까지, 국민정부를 세워 먼저 중국을 개혁하려 했던 것도 국민당의 주석인 장개석이다. 비록 패망했다고는 하나, 그 유물들을 가지고 바다를 건넌 것을 약탈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19세기 말 일본의 침략에 우리나라도 맞서 싸웠지만, 중국을 양분하고 있던 국민당과 공산당도 손을 맞잡고 일본의 침략에 대항한다. 이른바 ‘국공합작’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우리는 중국과 같은 입장이었다. 타이완도 50년가량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다만, 일본의 지배시기를 바라보는 정서적 차이가 있다. 타이완 사람들은 일본의 지배를 그다지 역사적인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패망하고 타이완으로 넘어와 자리를 잡은 장개석의 국민당 세력을 침략세력으로 간주하는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혁혁한 경제발전의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에서 장개석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원흉이었던 일본을 원자폭탄으로 항복하게 만든 후, 아시아에서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군사력을 배치하고 정치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인 애치슨은 극동에서의 미국방위선은 알류샨 군도에서 일본을 거쳐 필리핀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것이 이른바 ‘애치슨 라인’이다. 미국이 세계지도에 자기들 맘대로 방위선을 그리는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지만, 필요 없어지자 버림받았다는 측면에서 우리와 타이완은 같은 역사적인 홀대를 받았던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 한국전이 발발하자 다시 미국은 우리 땅에 와서 실컷 전쟁터로 만들고,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미국 내 여론이 안 좋아지니까 군비축소를 이유로 70년대 초 다시 아시아에서 발을 뺀다. 이것은 소위 ‘닉슨 독트린’이다.

우리의 힘없음을 먼저 탓해야겠지만, 전승국들의 이런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대결 때문에 해방된 지 몇 해만에 우리나라가 분단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박물관 구경 왔다가 너무 딴 길을 돌아가면 안 되니까 이만 줄이겠다. 두 나라를 돌아보는 4박6일 동안 내게는 아시아의 근대사가 가장 중요한 느낌이고 주제였다. 역사학자인 토인비는 ‘미래의 거울은 과거’라고 말했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과거를 보라는 말이다. 시대가 변해서 그 모습이 아무리 달라져도, 역사를 통찰하고 제대로 교훈 삼는 나라가 현재에 발전하고 미래에도 영속하지 않겠는가.

또 중정기념관, 국부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국부(國父)는 국민당의 지도자인 손문을 일컫는 말이고 중정(中正)은 장개석의 이름이다(우리가 흔히 부르는 장개석의 介石은 자이다). ‘삼민주의’로 유명한 손문은 중화민국의 초대 임시총통을 지내고 비록 짧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을 통치했던 사람이다. 1925년 손문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장개석이 중화민국의 총통이 되고 국민당을 이끌며 중국대륙의 통일을 꿈꿨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한 때는 원활한 관계였던 공산당과 대립하게 되고 결국 모택동에게 밀려 200만 명의 유민과 함께 타이완으로 쫓겨가 현재에 이른 것이다.

두 기념관은 이런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료들과 그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달리 말하면 아시아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살아있는 역사책이라고나 할까. 그것이 좋건 나쁘건 아시아 모든 나라들이 자기의 역사를 얘기할 때 중국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이 두 기념관을 둘러보며 격변기 속에서 소용돌이 쳤을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모르는 자료를 발견해 반갑기도 했었다.

이후 △타이페이(臺北)시청의 사회복지국(臺北市政府 社會福利團隊) △충렬사 △서문정 거리 △용산사 △야시장 등을 둘러보며 2박 3일의 빼곡한 타이완 일정을 마감했다. 시간이 부족했기에 태평양의 밤하늘을 날아서 새벽에야 싱가포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Singapore) ; 작지만 야무진, 부족하지만 다 갖춘 나라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아무리 야심한 시각이라고는 하지만 깨끗한 거리며, 잘 정돈된 빌딩들, 이국적인 가로수들의 살랑거림에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조각 잠을 청했다.

면적이 우리나라의 1/100도 안되는 나라(약 700㎢, 국토의 가로 직선거리가 마라톤 코스보다 약간 짧다), 인구는 겨우 500만 명. 그런데 국민소득은 우리의 2배가 넘는 나라. 수치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과연 2박3일 동안 싱가포르는 어떤 얼굴을 하고 나에게 다가올까?

싱가포르라고 지배에서 자유로웠던 나라는 아니다. 여러 고대제국의 지배를 거쳐 유럽 국가들의 지배를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3년간 일본이 점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싱가포르 역사에 있어 중요한 계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1819년 동인도회사의 일부가 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영국 식민지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기이다. 지리적으로 너무 적합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싱가포르에서 머무는 동안 보았던 모든 시가지의 형성이 거의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부강한 현재 싱가포르의 물적 토대가 형성된 시기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1965년 주권국가로 명실상부하게 독립하면서 부터이다. 현재까지도 총리를 맡고 있는 ‘리콴유(李光耀)’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조금은 지나치고 완고하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시기에 하드웨어를 구축했다면, 두 번째 시기에 소프트웨어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다.

어쨌거나 이 조그만 나라가 현재는 아시아 해상물류와 금융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제1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부러움이 가시지 않는 대목이다. 비록 자원부국은 아니지만 우리도 특유의 장점을 잘 살린다면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자, 그럼 부러워하지만 말고 발걸음을 옮겨 싱가포르의 구석구석을 찾아가보자. 우리의 첫 날 일정은 △뉴워터 하수처리센터 △쥬롱 새공원 △보타닉가든 순이다. 관광지는 생략하고 우리 호기심의 초점을 싱가포르 수자원 관리를 엿볼 수 있는 ‘뉴워터 하수처리센터(NEWater Visitor Center)’에 맞추기로 하자. 싱가포르는 ‘물부족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작다보니 수자원이 당연히 부족하고 인근에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수입하는 지경이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수자원은 4가지에 의존하고 있는데 저수, 수입수, 담수 그리고 뉴워터(Local Catchment, Imported, Desalinated & NEWater)이다. 용어가 우리에게 생소할지 모르지만 쉽게 얘기하자면 물을 수입하고 바닷물을 정화해서 쓰는 것도 모자라 생활폐수를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막상 우리가 싱가포르 정도의 물 부족 상황에 처한다면 습관이 안 된 우리로서는 말도 못할 고통과 혼란에 시달릴 것이다.

이처럼 싱가포르 4대 수자원 가운데 폐수를 정화해서 생활용수 및 음용수로 활용하게 만든 물이 바로 ‘뉴워터(NewWater)’이다. 자, 이제는 물이 부족하면 우리가 버린 폐수까지 재활용해서 그것을 다시 우리가 마셔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뉴워터를 생산(엄밀한 의미에서는 처리)하는 시설이니 보통의 기술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의 정화시설은 여러 선진국 기술의 집합체나 다름없었다. 사실 내가 아는 바로도 이즈음부터 선진국들의 ‘수처리 시설’에 대한 기술적인 경쟁이 비약적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얻을 중요한 교훈이 있지 않겠는가. 필요하다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내는 인간의 집념도 대단하지만, 현재 자연이 우리에게 베푸는 자원을 아껴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허락된 자원은 선대가 물려준 것이 아니라, 후대에게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느껴야하는 교훈은 물을 아껴 쓰자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우리는 매일 식사를 하면서 음식물을 남기고 매일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쓰레기를 배출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먹고 마시고 버리는 사람이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목포에 들어설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하수슬러지 처리시설도 우리의 생활을 위해서 가장 그리고 기본적으로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을 해서 예측 가능한 실수를 줄여야만 한다.

싱가포르의 국회의사당과 ‘F1 경기장’을 들러본 후, 연수의 마지막 방문지는 ‘센토사 섬’이었다. 여기서는 어디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는지 봐야겠다는 오기가 고개를 들었다. 워낙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생기는 반발 심리였다. 하지만 그 쓸데없는 오기는 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섬으로 들어가는 해상 케이블카에서 펼쳐지는 섬의 아름다운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결코 자연미는 아니다.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가꾸고 만든 것이지만 참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개발의 교과서적인 관광지가 아닌가 싶었다. 워낙 땅이 좁은 나라이다 보니 낭비할 곳이 없어서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고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센토사 섬을 둘러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우리 목포의 고하도였다. 고하도는 위치상으로도 활용가치가 높은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 목포시의 입장에서도 이미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들러 본 센토사 섬은 말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시작 단계부터 전체적인 청사진을 확실하게 가지고 개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하도가 센토사 섬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관광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목포도 관광객들에게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수를 마치며

시의원이 되어서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봤던 나는 해외여행의 초보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몇 차례의 연수를 통해 약간의 요령이 생긴 것 같기는 하다. 이번 연수를 떠나기 전에 스스로 다짐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로 치장된 각종 자료들에 매달리다 범하는 피상적인 오해를 줄이자는 마음이었다. 또한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목포라는 그림과 오버랩시키려고 애썼다. 물론 직접 끼워 맞추기야 힘들겠지만, 좋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목포스럽게 대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주관적이며 심심치 않은 오류가 있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것을 마지막으로 부탁드린다. 다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보따리는 목포시의회 홈페이지에 ‘해외연수보고서’로 올려 놓았으니 필요하신 분은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과 실어주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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