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시민)가 ‘개·돼지’로 취급되지 않으려면...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침묵하는 시민 민주주의 품격은 정치인 품성이 아니라, “시민의 집요함” 민주주의는 정치인의 수준이 아니라 시민의 수준에 결정

2026-05-28     정진영 기자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침묵하는 시민
민주주의 품격은 정치인 품성이 아니라, “시민의 집요함”
민주주의는 정치인의 수준이 아니라 시민의 수준에 결정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이 고용한 대리인이다.

선거는 권력을 부여하는 절차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다. 오히려 선출된 권력이 본래의 목적과 책임을 망각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사실이 자주 망각되고 있다. 정치인은 어느 순간부터 “설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 할 존재”로 포장되고 있으며, 유권자는 시민이 아니라 팬이 된다. 그때부터 민주주의는 제도라기보다 신앙 체계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유권자가 너무 쉽게 길들여 진다는 점이다. 선거판에서 정책은 이해하기 어렵고, 팩트는 귀찮고, 검증은 피곤하다. 반면 구호는 쉽고, 분노는 즉각적이며, 편 가르기는 쾌감이 있다. 이 구조에서 정치인은 자연스럽게 ‘능력 있는 관리자’가 아니라 ‘우리 편 감정대변인’으로 진화한다. 그리고 그 순간, 시민은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속였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에서, 모두가 기꺼이 속아준다.

정치 팬덤은 이제 낯선 현상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점점 정상처럼 취급된다는 점이다. 내 편 정치인은 무능해도 사정이 있고, 상대는 유능해도 악의가 있다.

같은 행동이 진영에 따라 ‘정의’가 되기도 하고 ‘범죄’가 되기도 한다.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는가”뿐이다. 이쯤 되면 민주주의는 토론이 아니라 응원전이다. 그리고 응원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목청이다.

정보 환경은 이런 퇴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길고 복잡한 설명은 외면받고, 짧고 자극적인 클립이 진실을 대체하고 있다. 맥락은 삭제되고, 감정만 남아 있다.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분노하고, 분노한 상태에서는 사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결국 우리는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소비한다. 그 결과는 단순하다. 더 많이 아는 사회가 아니라, 더 쉽게 흥분하는 사회가 된다.

정당은 더 이상 정책 경쟁의 조직이 아니라 정체성의 깃발이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누구인가”가 중요해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라진다.

이때 정치인은 정책 설계자가 아니라 이미지 연출자가 된다. 능력보다 메시지 관리가 중요해지고, 결과보다 태도가 평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유권자는 그 쇼를 보며 자신이 주권자라고 믿는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은 이렇게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이 스스로 싸워주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고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본게임이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는 투표가 끝나면 정치도 끝났다고 착각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공약의 이행 여부, 권력의 남용 가능성, 정책의 실효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시민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유지한다. 권력은 견제받지 않을 때 쉽게 자기 확신에 빠지며, 그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게 된다. 따라서 시민의 감시와 비판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공약은 기억되지 않고, 책임은 추적되지도 않고 있다. 정치인은 공약을 ‘약속’이 아니라 ‘연설문’ 정도로 취급하고, 시민은 그걸 굳이 문제 삼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정치가 아니라 상호 면책 계약에 가깝다.

더 심각한 것은 시민들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방식이다. 정치적 반대자는 토론의 상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상대를 악마화할수록 내 편은 정당화되고, 정치인은 그 균열 위에서 가장 편안하게 올라탄다. 시민이 서로를 미워하는 사회에서 권력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이미 대신 싸워주는 사람들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돼지”라는 표현이 불쾌한 이유는 단순히 모욕적이어서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현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시민이 스스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진영의 구호를 진실보다 앞세우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그때 권력은 시민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이의 틈에 편안히 앉는다.

결국 민주주의의 품격은 정치인의 품성이 아니라 시민의 집요함에서 나온다. 권력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민, 설명을 요구하는 시민, 편을 묻기 전에 사실을 확인하는 시민이 있을 때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권자”가 아니라 “관람객”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정치인의 수준이 아니라 시민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정진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