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오늘의 정치 “와신상담이 남긴 리더의 조건”
인내, 치욕을 견딘 자만이 시대를 바꾼다
◎ 정진영
‧ 호남타임즈신문 회장
‧ 목포타임즈신문 회장
‧ 행정학박사
‧ 사회복지학박사
역사는 때때로 한 사람의 인내가 시대를 바꾸는 순간을 보여 준다. 수많은 영웅과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은 특히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것은 단순히 괴로움을 견디는 이야기가 아니라, 치욕을 삼키며 끝내 뜻을 이루고자 했던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왕 구천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그는 신하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오나라로 끌려갔고, 적국의 왕 부차 앞에서 굴욕적인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구천은 부차의 말을 돌보고 마구간 일을 하며 치욕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 부차가 병이 들었을 때는 그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대변의 상태까지 확인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한 나라의 왕이 적국의 왕 앞에서 자존심마저 내려놓아야 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구천은 그 치욕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쓰라린 시간을 마음 깊이 새기며 언젠가 나라를 다시 일으킬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고국 월나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편안한 삶을 거부했다. 일부러 거친 장작 위에서 잠을 청했고, 방 안에는 쓸개를 걸어 두어 날마다 그 쓴맛을 보며 패배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 했다. 아니 지속적으로 마음을 새로 다졌다.
하지만 와신상담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인내에만 있지 않았다. 구천은 복수를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시작했다. 그는 사치를 멀리하고 백성들의 삶을 살피며 농업과 군사를 정비했다. 충신 범려와 문종의 조언을 받아들여 무너졌던 국력을 하나씩 회복해 나갔다.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나라의 힘을 키웠고, 병사들은 훈련을 거듭했다. 구천은 조급하게 칼을 빼 들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단련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 모습은 단순히 복수심에 사로잡힌 군주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치욕을 잊지 않았지만 그 감정을 나라를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를 맞은 월나라는 오나라를 무너뜨리며 오랜 패배를 되갚았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정치인의 진정한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권력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시련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어떤 정치인은 실패 앞에서 쉽게 변명하거나 현실과 타협하지만, 어떤 이는 깊은 좌절 속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신념을 잃지 않는다. 와신상담은 바로 그러한 인내와 각오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오늘날의 정치 역시 끊임없는 갈등과 혼란 속에 놓여 있다. 그럴수록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순간의 인기나 권력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는 책임감과 인내일 것이다. 백성을 위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 스스로 끊임없이 돌아보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장작 위의 차가운 밤과 입안 가득 퍼졌을 쓸개의 쓴맛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그리고 그 쓰디쓴 시간을 견디며 묵묵히 힘을 길렀던 사람만이 결국 시대를 움직이는 이름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호남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