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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노무현재단 전 전남공동대표> “할머니의 손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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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노무현재단 전 전남공동대표> “할머니의 손수레”
  • 호남타임즈
  • 승인 2018.11.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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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인 노무현재단 전 전남공동대표.
오래된 기억을 더듬더듬 소환했다. 목포 동명동 철길은 철거 된지 꽤 되었다. 대신 건너편 벼랑위에 집들은 예나지금이나 위태롭다.

칠칠계단, 이곳은 내 유년시절이 띄엄띄엄 저장된 곳이다. 일곱 살 무렵 처음으로 나는 기차를 봤다. 섬 아이의 뭍 구경인 셈이다. 어머니께서 밑반찬 등을 쌓아 나를 배에 태워주셨다.

형에게 보낸 심부름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형 자취집을 몇 번 왔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우리 형은 목포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 형은 지난해 고희를 넘겼다.

엄마가 올망졸망 쌓아준 보자기를 손에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골목 끝에 있는 형 자취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형은 없고 교복 입은 예쁜 누나들이 서너 명 있었다.

그 누나들은 나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녔다. 그 중 한 누나가 나를 특별히 챙기며 예뻐했던 기억이다. 그때 번데기와 자장면 그리고 제과점 빵을 처음 경험했다.

형은 누나들 이야기를 엄마께 하지 말라며 나를 회유했었다. 물론 의기양양 일렀다. 그 후 형에 대한 어머니의 처벌은 나는 알지 못한다.

일곱 살 꼬마가 장년이 되어 찾은 50년 전 기억이 오염되지 않았다면 당시 여학생 중 한 명이 지금 우리 형수가 맞는지 궁금하다. 이제 와서 밝혀진들 뭘 어찌하겠는가.

세월이 흘러 칠칠계단은 세련된 변화를 겪었다. 표지석이 기억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다. 초가을 햇살이 아직은 후덥지근하다. 골목에 들어섰다. 수많은 잔상이 뒤엉킨다.

들숨 날숨 진정하며 골목을 걸었다. 대문도 없는 낡은 집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위로한다. 긴 세월을 무던히도 견딘다. 골목은 막다른 길이었다가 다시 사방으로 흩어진다.

머릿속 좌표 없이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형 자취방은 미로 같은 골목 몇 개를 지나 부엌이 딸린 방이었다. 어른이 되어 찾은 골목은 햇살조차 빠져 나아가기 비좁다.

지금도 지게로 연탄배달을 하거나 사회단체 사람들의 인간 띠 연결로 연탄이 배달된다. 세상은 격하게 바뀌는데 변화에 느릿한 곳이 도심 곳곳에 제법 있다. 이곳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골목을 빠져 나왔다.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세워 놓고 계단에 걸터앉아 검정봉지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는다. 그 옆에 나도 앉았다.

할머니는 약봉지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마치 물을 들고 있는 터라 물병을 할머니께 건넸다. 나를 힐끔 쳐다 보더니 물병을 받아 약을 삼켰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누구냐고 물었다. 긴 설명은 생략했다.

할머니 남편은 바다에서 죽었고 작은 아들은 결핵으로 잃었다. 딸은 부산에 살지만 큰 아들은 몇 년째 소식이 없다. 당신은 올해 여든이다. 바람한줌이 할머니 이마에 땀을 식히며 물러난다.

가족에 대해 더 물으려 하니 서둘러 일어나셨다. 수레를 밀며 고물상에 도착했다. 20여분 걸린 듯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폐지를 팔고 나오면서 할머니를 아는 체한다. 나를 힐끔 보며 “누구요?”, 할머니 대답이다.

“우리 큰 아들” 할머니는 하루에 두 번씩 폐지를 판다. 이런 분들이 이곳 고물상에만 10여명이 넘는다고 고물상 주인은 귀띔한다. 손수레에 가득 실은 폐지는 수레와 함께 계근대 위에 올려 무게를 측정한다.

100킬로그램 정도 된다. 손수레 무게 50킬로를 제외하면 순수 폐지 무게는 50킬로그램이다. 폐지 1킬로그램에 40원이니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채워도 할머니 손에 쥔 돈은 겨우 2,000원이다. 손수레 가득 하루 두 번을 수거해도 할머니 하루 수입은 4,000원이 전부다.

골목 어귀에 손수레를 간수해 놓은 할머니는 인근 생선 가게에 들려 검정봉지를 받아 나온다. 그 모습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다. 검정봉지 안에는 생선 대가리가 들어있다.

저녁 찌개용 반찬거리다.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등어 한 마리를 토막 내 할머니에게 전해주며 “내일 모레가 추석인디 올해도 자석들은 안 온답디야?”

할머니는 대답 대신 연신 고맙다며 총총 걸음으로 가게를 나오신다. 저녁 한 끼 대접하겠다는 말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할아버지께 당신 큰 아들이라고 거짓말 했다며 내 손등을 여러 번 쓰다듬었다.

골목에 들어선 할머니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어르신 또 들릴게요. 건강하세요.”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엇그제 77계단 골목을 다시 찾았다.

골목어귀에 할머니의 손수레가 얌전히 묶여있다. 좁은 골목은 인기척도 없다. 낮은 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대신 야속한 가을볕만 고샅고샅 서럽다.

<호남타임즈신문 2018년 10월 31일자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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