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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4>애국지사 낭산 김준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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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4>애국지사 낭산 김준연 선생
  • 호남타임즈
  • 승인 2013.03.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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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지사 낭산 김준연 선생 기념비
▲이름 : 김준연(金俊淵)
▲생애 : 1895년 3월 14일 ~ 1971년 12월 31일
▲출신지 : 전남 영암
▲운동계열 : 언론
▲소속 및 직위 : 조선유학생학우회장, M.L당책임비서
▲활동지역 : 일본 동경, 서울
▲훈격 : 애국장(1991)
▲공적내용
전라남도 영암(靈岩) 사람이다.
한문을 수학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을 졸업하였다.
유학 중에 조선기독교청년회(朝鮮基督敎靑年會)의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에 주동적으로 참가하였다.
1919년 11월 여운형(呂運亨)의 도일(渡日) 때에는 신인회(新仁會)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환영회를 조직하고 조선독립을 선전하였다.

귀국하여 동아일보(東亞日報)기자로 활동하면서 1926년 12월에 안광천(安光泉)·한위건(韓偉健) 등과 함께 세칭 ML당이라고 부르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을 재조직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의 발기인이 되고 신간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8년 1월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이른바 ML당 사건이라고 부르는 제3차 공산당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7년형의 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6년 8월에 베를린 올림픽대회의 마라톤 경주에서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우승 사진을 게재하면서 손선수의 앞가슴에 붙인 일장기(日章旗)를 지워버리고 실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제4차 무기정간을 당하게되자 주필이던 그는 사장 송진우(宋鎭禹)와 함께 사임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의 간부로 그리고 역대 민의원으로 국회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자료제공 : 목포보훈지청>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목포타임즈/호남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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