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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7>애국지사 김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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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7>애국지사 김석 선생
  • 호남타임즈
  • 승인 2013.04.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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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지사 김석 선생
▲이름 : 김석(金晳)
▲생애 : 1910년 3월 28일 ~ 1983년 2월 25일
▲출생지 : 전남 함평
▲운동계열 : 병인의용대
▲훈격 : 독립장(1968)
▲공적내용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에서 김영곤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나 조실부모하고 임정 국무위원이 된 숙부 김철의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924년 영광고보를 중퇴하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철을 찾아 상해에 도착한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퍼불릭스쿨에서 졸업하였다.

1928년 1월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에 도항하여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재학중 학자금을 탕진하고 동년 4월 귀향하여 전남 나주군 문평면사무소에 들어가 완구용 권총으로 면장 이하를 협박하여 금고를 빼앗아 도주하다가 체포되었다. 동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아 개성형무소에서 복역 중 1930년 4월 가출옥하였으며 1931년 7월에 목포를 경유 상해에 도착하였다.

동년 9월 상해의 법정대학 정치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김구 등이 조직한 대한교민단대회에 참석하여 서기로 취임하여 만보산사건을 규탄하는 등 활동하였다. 동년 11월 재상해중국학생연합회에서 항일구국의 기치 아래 대일전쟁을 위한 중국 구국학생의용군이 조직되자 법정대학의용군에 가입하여 군사훈련을 이수하고 의연금 모집에 종사하였다. 1932년 1월 공산단체인 상해한인청년동맹을 배격하고 일제의 침략세력을 적극 소멸함은 물론 독립투사의 전위적 활동과 지역적 책임완수 및 한국청년의 단체훈련을 실시하여 혁명역량을 총집중할 것을 강령으로 내걸고 상해한인청년당을 조직하였다.

그는 동당 이사장에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32년 봄 상해 홍구공원의 투탄사건이 있은 후 그는 법정대학을 퇴학하고 조소앙계열에 속하여 임시정부 피난자금을 중국홍십자사와 교섭하여 지원 받아 800불을 조소앙에게 전하였으나 김구계열과 알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동년 11월 22일 중국인 중한민족항일대동맹원 황전영으로부터 대항일전에 사용할 폭탄제조 의뢰를 받아 이를 준비하다가 상해 프랑스조계의 황전영의 집에서 홍구공원 사건 혐의자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로 일경과 프랑스관헌의 분규로 곧 석방되었다.

석방 후 1926년에 조직된 무력단체인 병인의용대의 세력을 부활하기 위하여 맹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3년 11월 22일 상해에서 다시 일경에 검거되었다. 그는 국내로 압송되어 1934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자료제공 : 목포보훈지청>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목포타임즈/호남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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