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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9>의병장 이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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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9>의병장 이대극
  • 호남타임즈
  • 승인 2013.05.0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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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대극(李大克)
▲생애 : 1875년 ~ 1909년 4월 3일
▲출생지 : 전남 영광
▲이명 : 영화·명식·대국
▲운동계열 : 의병
▲훈격 : 독립장(1990)
▲공적내용
전남 영광 사람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영광읍민의 추대로 수성장이 되어 활약함으로써 군사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동학농민운동이 끝난 뒤 참봉으로 임명되었으나 국운이 기울어짐을 개탄하여 귀향하였다.

그 뒤 을사조약이 늑결되어 일제의 국권침탈이 가속화되자, 1906년 봄 영광에서 거의하여 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듬해 여름 기삼연이 장성에서 거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9월에 수백 명의 군사와 다수의 군비를 가지고 고창 문수사에 유진하고 있던 기삼연을 찾아가 의진을 통합한 뒤 기삼연을 맹주로 추대하고 그 휘하에서 도포장 겸 군기감이 되었으며, 호남창의회맹소를 설치하여 대한매일신보에 격문을 보내어 거의명분을 천명하였다.

같은 해(1907) 10월에는 일군이 야음을 틈타 은밀히 의병진을 포위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군사를 좌우로 분산시켜 협공케 하여 일군에게 타격을 가하였다. 이어 법성포·무장·고창·영광 등지를 전전하며 연전연승을 거두고 일인 추방을 목적으로 활동하다가 장성에서 회군하고 말았다.

동년 10월 11일 기삼연과 함께 무장 고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군을 유인, 공격해 타격을 가하였다. 이어 불갑산 연실봉에서 진을 구축하��일군과 싸워 승리하였으나, 계속되는 전투로 전력이 크게 소모되어 11월에는 장사산으로 후퇴하여 진용을 정비하였다. 그 뒤 일군은 현상금을 걸고 그를 체포코자 하였는데, 1909년 4월 3일 잠든 사이에 현상금을 노린 배반자에 의해 참살됨으로써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자료제공 : 목포보훈지청>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목포타임즈/호남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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