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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14>서태석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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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14>서태석 애국지사
  • 호남타임즈
  • 승인 2013.06.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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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서태석(徐邰晳) / 1885년 6월 17일 ~ 1958년 7월 20일
❍ 출생지 : 전남 신안
❍ 운동계열 : 조선농민총동맹
❍ 훈격 : 애국장(2003)
❍ 공적내용

전남(全南) 신안(新安) 사람이다.

신안군(新鮟郡) 암태소작회(岩泰小作會) 회장과 조선농민총동맹(朝鮮農民總同盟)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으로 활동하였다.

서태석은 1920년 3월 28일에 전남(全南) 목포(木浦)에서 표성천으로부터 태극기와 대한독립을 촉구하는 격문 200여 매를 전달 받고, 이를 이튿날 29일 밤에 송도공원(松島公園) 및 철도정거장 등지에서 붙이거나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 일로 인해 서태석은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1920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서태석은 1923년부터 농민운동에 참여하여, 암태소작회 회장으로서 부당한 소작료율 개선을 위해 소작투쟁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1924년 4월 전조선노동대회(全朝鮮勞動大會)에 참석차 상경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차단되었다. 이 일로 서태석은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1925년 3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후 서태석은 1926년 말 조선공산당(춘경원당)에 입당하여, 전라도 대표 및 선전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 1927년 9월 9일 조선농민총동맹(朝鮮農民總同盟)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으로 활동하다가 1928년 4월 피체되어 1930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자료제공 : 목포보훈지청>

 

<목포타임즈신문 제63호 2013년 6월 27일자 10면>

<밝은 지역사회를 열어가는 목포타임즈/호남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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